인정

인정해야겠다. 나는 뭇 사람들에게 대체로 필요한 사람이 아니다. 가슴아프지만, 현실이다. 비하할 필요는 없다. 다만 나를 향한 무심에 내가 스스로 속을 썩이거나 무심한 사람에게 적의를 품어서는 안 된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 작은 것도 바라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기대하지 말고, 의지하려 하지 말고, 서운해 하지 말자.

소중한 사람 제대로 챙기기도 어렵다.

난 덕이 없다 일기

머리맡에 할머니가 입던 옷을 걸어뒀다. 시간이 오래 지나며 옷에서 나던 할머니 냄새도 나지 않게 되었다. 나의 기억속에서도 감각이 점점 옅어진다. 할머니 기일을 기억해주는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편마비 일기

편측마비가 오늘의 걱정거리다
오전부터 왼발과 왼손에 힘이 잘 안 들어간다
작년 의사 과선배랑 술한잔 하며 들은 이야기.
너 안 죽으니까 걱정 하지마
그런데 식물인간은 될 수 있어
네..그게 더 골치 아픈 거 같은데요
아무쪼록 어머니 살아계시는 동안 내가 잘못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도태 일기

도태되고 있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 요즘
무엇을 전념해서 해 봐야할 지 모르겠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을 줄 알지만
건강이 좋지 않으니 아무래도 여유가 없다. 시야가 좁다
풍족하지 못한 것이 사실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씻으려는데 찬물만 나오고 거울에는 젊은 나이에 벗겨지는 이마가 보이고 몸은 아프고 읽으려는 책은 눈에 안들어 오고 하는 날에는 잊어버린 습관이 찾아온다. 한 가지만 하지 진짜 내 몸은 가지가지 하네. 몸 관리 신경 쓰면서 살았는데 왜 이러냐. 오늘 자기 전까지만, 간만에 조금 우울해야겠다.


이게 다 뭐라고 일기

성주 사드 투쟁을 지켜보면서 배운 가장 큰 것 하나는 가벼워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말하는 의무와 희생, 동일성과 하나의 중심을 강요하는 행위를 훌쩍 넘어버릴 수 있는 가벼움. 그리고 그 산뜻한 가벼움으로 사람을 만나고 삶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음먹은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몸이 좀 좋지 않아서 기분이 안좋기도 하다. 지병과 상관없이 새로운 병인가 하여 미리 보험을 좀 들어볼까 했고 아는 아줌마에게 견적을 부탁헸다. 그 아줌마는 견적을 내 보더니 엉뚱한 소리를 했다. 생명보험은 가입 안 되고 화재보험은 가능하다고 했다. 내가 물어본 건 실비와 암보험이었는데. 더 알아본다고는 일주일 넘게 소식이 없다. 인연이고 뭐고 돈 앞에서는 장사 없는 건가. 내가 탈나면 불이익이 가나보지? 하며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어뮬쩍 뭉개고 연락이 없는 것은 괘씸한 마음도 들었다.

다른 한 명에게도 견적을 부탁했는데 역시 마찬가지다. 그 사람은 심사평가 문장을 보여줬는데, 내 지병은 고위험군이라서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아 내 몸은 그냥 사지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리가또였지.

한번씩 내 상태를 상기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래서는 답이 없는 걸 이미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 한다.

괜한 부담 준 것 같아 미안합니다. 제 상황을 솔직하게 말하기 미안해서 고민했을 수도 있겠지요. 괜찮습니다. 그럴수도 있지요.

마음에 무거운 건 담아두지 않고 산뜻한 호의만 남기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무거울 중 자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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